선원장님 공부 이야기


아래 글 ①에서 ⑥까지는 2003년 3월에 선원장님이 어떤 분과 대담하는 도중에 질문에 답한 것이고, ⑦에서 ⑨까지의 내용은 2010년 4월에 그 뒷 이야기를 부가한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셨는지 저희들이 알기 쉽게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① 저의 그때 상황이 박사과정에서 선불교를 공부하면서 선(禪)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써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안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이라고 하는 것은 책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스승님을 그 당시에 우연한 계기로 만나서 그 회상에서 공부를 했죠. 아마 제 기억으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그 분에게 갔었던 것 같아요. 가면 <원오심요>니, <서장>이니, <임제록>이니, <육조단경>이니 하는 어록을 내놓고 설법(說法)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 당시 스승님은 부산대학교 앞에서 하숙집을 하고 계셨어요. 하숙집 주인 할아버지셨는데, 처음에 그 분의 회상에 나가서 그 분을 만나보니까 그냥 할아버지인데도 뭐라 할까, 불신감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여튼 그 당시에는 그 분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는 판단 같은 것을 내릴 입장은 아니었고, 그냥 제가 선에 대하여 목이 마른 상황이었어요. 선에 대해서 저는 아무것도 공부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절이나 선방이나 이런 곳에 가본 적도 없었고, 스님들을 만나본 적도 없었고, 아니 솔직히 대학원에서 선을 전공으로 삼기 전까지는 선에 대하여 읽은 책도 거의 없었습니다. 
   대학의 철학과에서 동서양 철학을 대강 훑어 보았지만 모두가 잘 짜여진 이론의 체계이고, 현재 내가 목말라 하는 그 무엇에 대한 해답을 주진 않더군요. 그래서 불교가 나의 목마름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대학원에서는 불교를 공부했습니다. 불교의 역사 그리고 초기불교, 소승불교, 대승불교의 교리를 공부하며 석사과정을 보내면서, 결국 선이 내 목마름을 실제로 적셔줄 살아 있는 불교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 뒤 여러 가지 선에 대한 안내서나 선어록 등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단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전달하거나 해석하고 있을 뿐이었으므로, 선 그 자체를 알고 싶은 의문과 목마름은 더욱 커져 가기만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스승님을 만난 것입니다. 학문이 아닌 선을 직접 가르치고 계신 분을 처음 만난 거지요. 그러니까 저로서는 그냥 선에 대해서 목이 말라 있는 그런 상황이었으므로, 이 분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보이니까 이 분에게서 공부를 하면 되겠다 안 되겠다 하는 그런 판단 자체를 아예 안 했어요. 안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생각 자체가 안 일어나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그저 그냥 설법을 한번 들어보니까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고, 모르니까 졸리기도 하고, 따분하기도 하고 그랬죠. 그러나 달리 어디를 가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어쨌든 스승에 대한, 처음엔 스승이란 그런 생각조차도 없이 그저 하숙집 주인 할아버지였는데, 그 분에 대한 믿음이라는 게 저도 모르게 생겼던 것 같아요. 처음 대하는 순간에 ‘아, 이 분에게 무언가 있구나!’라는 그런 느낌을 저도 모르게 받았는지도 몰라요. 
   여하튼 저는 선을 실제로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원하고 있었는데, 그런 기회가 아주 쉽게 학교 바로 앞에서 왔기 때문에 좋았습니다. 저는 오히려 절에 나가는 것을 좀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스님이라는 존재와 예법 같은 것에 대해서 부담이 있더라고요. 그러나 이 분은 하숙집 주인 할아버지시니까 아무 부담이 없었죠. 그래서 그냥 부담 없이 가서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특별히 질문을 해본 적도 없었고, 그 분도 저한테 이런저런 말을 건넨 적도 없었습니다. 그냥 뒷자리에 가서 조용히 앉아 듣고 있었을 뿐이에요. 

② 어쨌든 공부를 해보자는 심정으로 앉아 있었을 뿐인데, 그렇게 시간이 한 몇 개월 지나니까 가기가 싫어지더라구요. 왜냐하면 그 법회의 분위기가 익숙한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법문도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영 모르는 이야기였고… 그렇지만 마음속에 어떤 신뢰는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에 분명히 무언가 있긴 있다. 뭔지 모르지만 여기서 내가 이것을 다 캐내어 보고, 그러면 내 나름대로 판단이 설 것이고, 그때가 되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또 공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여기에서 캐내 볼 만큼 캐내 보자.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스승에 대한 신뢰감이랄까? 어쨌든 그 분을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은 없습니다. 분명히 이 분이 뭔가를 알고 계시는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 분이 알고 있는 것을 나도 알고 싶다는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특별히 마땅하게 다른 데 갈 곳도 없고 해서 계속 거기를 다녔죠.
   하나 기억나는 것은, 같이 공부했던 도반들과 가끔씩 공부가 끝난 뒤에 학교 앞의 찻집을 찾아 차를 마시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그분들이 말씀하시길, “여기에서 끝을 내어 보아라.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올 것이다.”라고 격려를 하시더군요. 이 격려에도 상당히 힘을 입었던 것 같아요. 일반 사회생활에서 만난 그런 인간관계가 아니라 도반이라고 하는 그런 인간관계는 또 다른 어떤 정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참 편하고 좋았어요. 
   그렇지만 저는 공부를 모르니까 공부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입을 다물고 항상 듣는 입장이었죠. 그냥 앉아서 무조건 듣기만 했어요. 모르니까 질문도 못 하겠더라고요. 무조건 아무 질문도 없이, 좋다 나쁘다는 그런 판단도 없이, 그냥 듣기만 했어요. 저는 그런 기질이 좀 있는 거 같아요. 뭐냐 하면,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그 일을 완전히 내 손아귀에 쥐고서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곰처럼 묵묵히 매달리는 그런 특성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자세로 매달렸던 거죠.
   그러다 몇달이 지나니까 같이 공부하러 갔던 후배 대학원생이 공부가 좀 됐다고 하면서 스승님하고 대화도 하곤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상하고, 그렇지만 겉으로는 그 후배를 격려도 해주고, 칭찬도 해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나도 반드시 해낼 것이다.”라는 오기랄까, 자신감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기대도 있었고…
   그러면서 또 일년 정도가 흘렀던 것 같아요.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가면 그냥 멍하게 앉아 있는 겁니다. 가끔씩 졸기도 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어떤 변화가 오느냐 하면, 처음 몇 개월 동안에는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되어 몸이 뒤틀려서 삼십분도 못 앉아 있고, 밖에 나가고 싶고 그러던 것이 시간이 좀 지나니까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거예요. 말하자면 훈습이 되어서 그 분위기가 익숙해지고 좋아지고 편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즐겁게 법회에 참석하게 되더라고요. 거기에 앉아 있으면 편하고, 앉아 있는 동안에는 뭔가 조금씩 세속적인 번뇌망상 같은 것들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좌우간 편안하더라고요. 그렇게 되니까 법회가 없어도 시간만 나면 스승님을 찾아가는 겁니다. 심심하면 갔죠. 일주일에 몇 번씩 가서 법회도 듣고 도반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서, 회상에서 스승님과 접촉을 자주 가졌죠.
   그래도 여전히 공부는 막막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화두(話頭) 드는 것을 한 번 시도해 보았는데, 저는 화두를 정말 하루도 못 들겠더라고요. 하루가 뭐야, 한 시간도 채 못하고 짜증이 났어요. “이렇게 하여 무슨 공부가 되겠나?” 하는 의문이 생기고… 지금 이렇게 목이 마른데 애써 화두를 든다는 것이 당장 나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지금의 이 목마름을 가시게 해 줄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행(修行)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그것이 해답을 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몇 년 간 목마름에 발버둥치며 도달한 결론은, 내가 의식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절망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끈질긴 의식이라는 감옥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의식뿐이었거든요. 결국 모든 손을 놓아 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목마름에만 맡겨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은 마른데 손 쓸 방법은 없고, 그러니까 오로지 설법의 회상에 그저 의존한 것입니다. “하다 보면 어찌 되겠지…” 하는 기대만 가지고, 법회에 참석하는 그것만 믿고서 그냥 그렇게 왔다갔다 하고 있었던 겁니다.

③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뭔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확실하게 잡히지 않으니까 자신감도 없고, 막막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잡힐 듯 말 듯 할 때도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었어요. “하면 되겠지… 죽기 전에는 되겠지…” 하면서(웃음)… 그러면서 학교 공부는 조금 밀쳐놓고, 책보는 것도 당분간 접어 두고, -책이 보기 싫어지더라고요- 그냥 법회에 참석하고 그 분위기에 젖어서, 오로지 이 공부에만 매달려 있었어요. 그 기간이 몇 개월인가 꽤 된 것 같은데, 그때 제가 더욱 분명히 느낀 게 뭐냐 하면, “내가 의식적으로 공부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구나! 어쨌든 내 자신의 힘으로는 이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내 힘으로 해낸다는 것은 포기해 버렸고, 그냥 “되겠지…”라는 희망만 가지고 법회에 열심히 참석을 했던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벌써 이 헤아리는 생각이 나오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버리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볼까, 저런 식으로 공부를 해볼까?”라는 식의 공부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어요. 공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 헤아리는 마음이 그 순간부터 다른 데로 가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공부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그냥 법회에만 무조건 참석을 한 거예요. 스승님에게만 의존하면서 법회에만 참석한 거예요. 그러니까 나 자신을 완전히 놓아 버리고, 포기를 하고, 그냥 법회에 의지를 했던 겁니다. 
   법회에 참석하는 동안에는 거기에 푹 빠져 있고 집에 돌아오면 마음속에는 항상 그 갈망이 상처처럼, 하나의 부담으로 자리하고 있으니까 늘 부담을 느끼고 있는 거지요. 법문을 듣는 것은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을 이해하는 건 나에게 공부가 아니었어요. 그냥 그 법회 분위기에 푹 젖어서 그 분위기 속에서 의식이 아닌 그 자리에 젖어 들어가는 것을 원했던 거지, 제가 머리로 말을 이해하는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거든요. 말이라는 것은 학교에 다니면서 너무도 많이 익혀 왔고, 저는 그러한 말의 구속이 싫었고, 공부는 말이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어요. 
   법회 자리에서도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말의 내용은 항상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몇 번 들으면 똑같은 말이기에 더 들을 것도 사실 없는 것이었죠. 그러니까 말을 들으러 가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말 아닌 이것에 빠져 들어가고 거기에 내 가슴이 열리기를 원했던 것이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간절하게 가슴이 열리기만을 원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말엔 관심이 없었어요. 
   사실 저도 지금 여기서 설법(說法)을 하고 있지만, 말하는 내용 자체는 항상 똑같은 거예요. 똑같은 내용인데 이해를 못하니까 계속 가슴만 답답했었죠. 말하자면 동일한 송곳으로 계속 가슴을 찌르고 있었지만 가슴에 구멍이 나지 않았던 거예요. 송곳은 언제나 동일하니까 “어떤 송곳으로 나를 찌르는가?” 하는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④ 그렇게 가슴이 열리기만을 바라고 앉아 있었는데, 어느 여름 날 스승님께서 법문을 시작하신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말씀하시길, “선이란 다름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선이다!”라고 하시며, 손가락으로 방바닥을 톡톡 치시는 거예요. 그 순간 꽉 막혀 있던 게 마치 순간적으로 섬광처럼 눈앞에서 싹 스쳐 지나가는 그런 식이었어요. 싹 하고 스쳐 지나가는데, “어, 그래 이거!” 하고 탁 통하더라고요. “아, 결국 이 분이 여태까지 이야기한 것이 전부 이것이구나!” 마치 지금까지 내 머리 속에 이 분 이야기가 다 녹음되어 있었지만 그 녹음이 여태까지 한 마디도 풀려서 들리지 않았는데, 그 때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니까 그 녹음 되어있던 것들이 싹- 하고 다 풀려서 들리는 식으로 소화가 다 되어서 내려가 버리는 거예요. 마치 엉클어져 있던 녹음테이프가 풀리면서 빠져나가듯이 말이죠.
   그런데 그것은 순간적이니까, 그 당시에는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도 안 했습니다. 어쨌든 그 후부터는 그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알겠더군요. 그러고 나서도 이 분이 하시는 말씀은 알아듣겠는데 그래도 여전히 의심 하나 없이 확고부동하고, 가슴이 딱 안정되고, 아무 문제가 없이 되었느냐 하면, 그런 게 아니에요. 여전히 모든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불안하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예요. 그러면서도 그 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나니까 점차점차 조금씩 조금씩 자꾸자꾸 시원해지더라고요. 
   그 후 어느 날인가 혼자 집에서 책을 보다가, 그 구절이 지금도 기억나는데, “온 세계는 전부 신의 은총이다.”라는 구절을 보는데 이번에는 온몸에서 열기 같은 게, 갑자기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온몸에 전율이 스쳐 지나가는 그런 묘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아! 아! 그래그래.” 하면서 정말 온 세계가 축복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 식의 경험들이 몇 번 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가슴속에서 “아, 이놈이구나! 내가 그토록 갈구하고 갈망했던 게 바로 이놈이구나!”라고 하는 것이 점점 더 뚜렷하게 확인되더군요. “이놈이구나! 이런 게 있구나!” 그런데 그것이 확인될 때의 그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밑바닥이 없는 텅 빈 허공 속에 발을 딛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아주 강렬하여 모든 힘을 그 속에 다 가지고 있는 무엇 같기도 하였습니다. 뭔가 뚜렷이 잡히는 것은 없지만, 모든 것이 다 해체되어서 아무런 갈등이나 분별이 없는 심연(深淵)같았어요. 나중에 제가 원자로(原子爐) 같다는 비유도 들곤 했는데, 좌우간 뭔가가 있어요. 거기에 의지해 있으면 잡생각이 안 일어나고 안심이 되고 안정이 되는 반면, 생각을 따라가면 항상 불안한 거예요. 생각을 따라가면 불안하고, 흔들리고, 떨리고 그렇더라고요. 그러나 불덩이와 같은 거기에만 의존하면 안정이 되고, 안심이 되고, 마치 엄마 품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포근함과 안정감이 있어요. 거기에 의지하고 있으면 여러 욕망이나 감정이나 생각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하여튼 그런 게 있더라고요.
   하지만 그 당시엔 그게 뭔지 뚜렷하지는 않고, 막연하게 그놈이 항상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런 확인의 느낌 속에서 안심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그것이 나와 확실하게 하나가 되었다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죠. 아직까지는 목이 마르고, 그립고, 미흡한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그놈과 하나가 되어 있으려고 하는 그 욕구밖에 없었어요. 그런 시간이 몇 년이 지난 것 같아요. 그놈에 대한 느낌이 어떨 땐 강하게 왔다가 어떨 땐 희미하게 되었다가, 주기적으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어떨 땐 아주 강하게 내가 정말 흔들림 없는 그 자리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가 어떨 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⑤ 그렇지만 스스로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 또 어떤 점이 남았느냐 하면, 삼매(三昧)에 빠지는 버릇이 생겨 있더군요. 삼매가 뭐냐 하면 잠시 혼자 있는 시간들, 쉬는 시간에 의자에 앉아 있으면 어떤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게 있어요. 그걸 우리가 공(空)이라고 그러는 거 같은데,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푹 빠져드는 겁니다. 그렇게 깊이를 모를 허공과 같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면 아무 생각도 없고 욕망도 없고 한없이 편안한 거예요. 아무리 피곤할 때도 앉아서 십분만 그렇게 빠져들고 나면 마치 오랫동안 수면을 취한 것 같은 상쾌함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러한 재미에 한동안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삼매에 빠진다는 것은, 빠져 들어갈 때가 있고 빠져 나올 때가 있기 때문에 그것 역시 기복(起伏)이 있는 거죠. 공부에 아직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자기가 비록 맛을 보고 이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말하자면 법의 맛에 취해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 후에 불교신문에 <서장>과 <임제록>을 강의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찾아오시는 분들과 더불어 공부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깨어나도록 이끌어 준다는 것, 남과 더불어 공부를 공유한다는 이것이 저의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도를 하다 보니 제 공부의 부족한 점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계속 보완이 되어 나갔지요. 저로 말미암아 새로 깨어나는 경험을 하시는 분들에게 제가 도리어 배우기도 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들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진실한 믿음을 가지는 분들은 하나 둘씩 깨어나는 경험을 하시고, 저와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저는 더욱 이 자리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⑥ 그러면서도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씩은 스승님의 법회(法會)에 참석하여 설법을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법회를 들으며 앉아 있는데 갑자기 모든 의식이 천천히 하나의 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더니 마치 욕조 바닥의 마개를 빼면 물이 물빠지는 구멍으로 모여들어 쏙 하고 빠져나가 버리고 모든 것이 깨끗해지듯이, 한 점으로 모인 의식이 쏙 사라져 버리고 전체 허공이 한 점이 되어 버리더군요. 나타나는 모든 것이 다만 이것일 뿐, 다른 것은 그 가능성조차도 사라져서 없어요. 갑자기 모든 것이 너무나 가벼워 졌습니다. 아무런 무게도 느끼지 못하겠어요. 전혀 힘이 들지 않아요.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일들은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평범할 뿐이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되질 않아요. 어긋나고 싶어도 어긋나지지가 않는단 말이예요. 훨씬더 편안하고 자유로웠습니다.
   예전에 삼매에 빠져들곤 할 때에는 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고, 어떤 경계가 다가오고 하면 삼매 쪽으로 피했거든요. 눈으로 보고 듣고 하는 대상들은 별 문제가 아니었어요. 어떤 경계가 제일 심한 거냐 하면 감정적인 문제, 사람이죠. 사람이 제일 안 떨어져 나가는 경계더라고요. 사물은 문제가 안 돼요. 사람은 감정적으로 서로 공감을 하고 교류를 하기 때문에, 상대가 공부가 된 사람이면 상관이 없어요. 공부가 된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 통하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되는데, 공부가 안 된 사람을 대할 땐 그 사람하고 나하고 아무런 유대관계가 없으면 괜찮은데, 인간적으로 여러 가지 정이 있고 이렇게 되면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가 못하더라고요. 그 관계란 부모, 형제, 친구, 제자 그런 인간관계들이죠. 공부가 된 사람들 사이에선 부담이 없는데, 부모나, 아내나, 자식이나, 친구라든지 동료, 제자 등, 정을 주고, 마음을 열어 놓고 교류한 사람들을 대할 때는 옛날의 세속적인 정(情)으로 쉽사리 이끌려 가 버리는 거예요. 그 경계가 정말 안 떨어져요. 그럴 때마다 나는 어디로 피하느냐 하면 빨리 혼자 있으려고 하고, 혼자 있으면 삼매 속으로 빠져들면서 자유롭게 되곤 했었어요. 계속해서 나는 이 자리에 있으려고 발버둥을 쳤던 것이죠. 
   그런데 한 점이 되는 이 체험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어요. 어떠냐 하면, 그러한 삼매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언제나 다른 것이 없어요. 훨씬더 자유롭게 된 것이지요. 공부를 한다는 그런 생각도 없고, 그저 평소의 일거수일투족이 다른 것이 없고, 이것뿐이라는 생각조차도 없었어요. 이 한 점이 되는 체험을 비유하여 말하면, 흰 백지 위에 조그마한 점이 하나 있는데 연필을 쥐고 위에서 그 점 하나를 정확하게 찍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수없이 옆으로 빗나가겠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정확하게 딱 찍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 연필을 떼지 않는 거죠. 딱 고정시켜 버리는 거죠. 또는, 전기선을 연결할 때 플러스, 마이너스 연결선이 서로 빗나가기만 하고 잘 안 맞다가 어느 순간 정확하게 딱 맞는 때가 오죠. 그러면 계속 불이 켜지죠. 그런 식으로, 그래서 계합(契合)이라고 하는데, 이 자리는 아주 작은 점 같지만 딱 들어맞으면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 버리는 자리가 있어요. 거기에 딱 들어맞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 이제는 감정이라든지 그런 모든 경계가 나를 흔들어 놓지 못해요. 피하고, 피하지 않고 그런 것도 없어요. 그런 것들이 다가와도 이제는 주위만 맴돌지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많이 자유롭고 많이 편안해진 거죠. 달리 손 쓸 일이 없어요. 그냥 평소대로 생활하는 거예요. 그야말로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거지요. 그것뿐이지 특별하게 법이란 게 없어요. 그야말로 손 가는 대로, 발 가는 대로, 생각 가는 대로 그렇게 그저 살고 있을 뿐이었죠.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⑦ 내 자신이 이만큼 자유롭게 되고 선원의 일도 여러 가지로 바쁘고 하자 스승님의 회상에 공부하러 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선원을 열고 난 2,3년 뒤에는 스승님의 회상으로 공부하러 가는 일은 그만두고 가끔씩 시간이 날 때에 들러 인사만 드렸습니다. 이제는 스승에게 의지함 없이 나의 길을 스스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하겠다는 내면적 욕구도 있었고, 내 자신의 공부는 내 스스로가 완성해야지 언제까지나 스승의 영향 아래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장성한 자식이 독립하여 자기의 길을 찾아간다고 하여야 할까요? 
   한편 무심선원이란 이름으로 선원을 열어 놓고 또 신문에 글도 쓰고 하여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인지 종종 마음공부하시는 분들이 찾아오셔서 대화를 요청하곤 하였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저의 공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공부를 드러내 보이시고 저는 제 공부를 드러내 보이면서 서로 탁마하고 공부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지요. 여러 부류의 공부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떤 분은 분명하게 외도(外道)의 길에 서 있었고, 어떤 분들은 저와 같은 길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서 저는 제가 분명히 세속에서 해탈하여 얽매임 없고 머묾 없고 흔들림 없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아직은 해탈한 자리의 힘이 세속의 분별과 시비의 힘을 압도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는 못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처럼 좀 더 강하고 확실하고 흔들림 없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선지식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네 공부가 높으냐 내 공부가 높으냐 하고 겨루어 보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그 순간 내면에서 시비심과 승부욕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어 공부에 방해가 될 것만 같았기에 그만두었습니다. 이렇게 싹이 올라와 자라고 있는 내 공부가 아무런 방해 없이 순수하게 본래의 성품에 따라 자랄 만큼 충분하고 완전히 잘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판단이 서지 않아서 애매한 부분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찾아오는 분들을 만날 때에도 그분들의 공부의 큰 테두리가 옳은 길에 있는지 그른 길에 있는지는 분명히 판단이 되었지만, 미세한 부분에 들어가서는 공부가 어느 정도로 완성되어 있는지를 잘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나의 공부가 그렇게 미세한 부분까지 초점이 정확히 맞아 있는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나의 눈도 그렇게 미세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온갖 것들로부터 많이 자유롭고 또 언제나 흔들림 없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바른 공부의 길에 들어서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아직 스스로의 힘과 능력이 부족함 또한 분명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또 입으로는 분명 여법(如法)하고 앞뒤가 맞는 분명한 말을 자신만만하게 하면서도 마음속은 그렇게 자신만만하지 못하고 무언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하였습니다. 이전보다는 많이 자유로와졌다고 하지만 역시 아직 육체와 마음의 감각이나 의식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많이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육체가 있고 마음이 있어서 그 장애에 걸려 있었죠. 특히 어쩌다 욕망에 끄달릴 경우나 가족이나 친지 등 사람들에 끄달릴 경우에는 언제나 자신의 공부가 아직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루에 일정한 시간은 혼자만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였습니다. 집안 식구들이라든지 친지들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존재였으므로 집에서도 가능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⑧ 그 당시에는 선원이 금정구 남산동에 있었는데, 저녁에 연산동 토곡에 있는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지하철을 동래역에서 내려, 온천천 강변 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혼자 걸어서 집으로 오는 것을 즐겼습니다. 물론 평소에 부족한 운동을 겸하는 산책이기도 하였지만 혼자서 냇가 산책로를 걸어가는 것은 또한 공부의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홀로 이 자리, 이 법과 함께 걷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법의 즐거움에 취하여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겼다고나 할까요? 산책로 주변의 풍경이나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내 마음 자리, 이 법의 자리와 마주하며 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몇 년도인지 기억은 없습니다만, 지금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저는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있고자 하기 때문에 내가 언제 어디서 무슨 체험을 했는가 하는 것들은 생각하지도 기억하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이 이야기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공부에 대한 믿음을 주리라는 기대 때문에 억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날 저녁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 법에 젖어서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산교라는 무지개다리 밑을 지나는데 문득 마음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마음이 없으지니 법의 자리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허공처럼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육체는 여전히 이전처럼 걷고 있고, 보고․듣고․느끼고․생각하는 것도 이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육체든 감각이든 느낌이든 생각이든 모두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과 같아서 아무런 걸림도 장애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비로소 정확히 초점이 들어맞고 틈이 사라져서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이 없고 법이 없으니 모든 경계에도 대상에도 전혀 걸림이 없고 끄달림이 없었습니다. 그 날 저녁 집에 도착하여 아내와 아이들을 보아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전혀 성가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너무나 자유로왔습니다. 사람들도 없고 나 자신도 없고, 마음도 없고 세계도 없었습니다. 공부니 법이니 하는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상쾌하였습니다. 마음이 없어짐으로써 비로소 모든 구속에서 해방이 되더군요. 사실 그 이전에는 늘 바로 (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이 자리에 깨어 있긴 하였으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망이나 마음에 부딪히는 경계들이 언제나 성가신 것이었고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장애가 있고 걸림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 마음이 없고 보니 사람도 없고 세계도 없고 진리도 없고 공부도 없고 깨달음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티끌하나 걸릴 것이 없어요. “산하대지에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방거사의 말이나, “깨달음을 얻는 부처가 없는데 또 무슨 깨달음이 있겠는가?”라고 하는 경전의 말을 비로소 알겠더군요.
   그 이후에는 경전의 말이나 선사(禪師)들의 말이나 아무런 걸림 없이 보는 족족 저절로 소화가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애매했던 구절들도 이제는 그냥 술술 수긍이 되니 감탄도 절로 나왔습니다. 누가 공부에 대하여 말하면 그 세밀한 부분까지 판단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세간에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선사들의 실제 살림살이가 어떤지도 알아보겠더군요. 거위왕은 우유와 물을 섞어 놓으면 물은 버리고 우유만 마신다는 말이 와 닿았습니다. 육조스님의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말씀, 금강경의 “얻을 법이 조금도 없다.”는 말씀, 반야심경의 “얻을 것이 없기 때문.” 또는 “장애가 사라진다.” 또는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라는 말씀, “만법에 자성(自性)이 없다.”는 말씀, “중도(中道)는 무주(無住).”라는 말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이라는 말씀, “어리석은 사람은 바깥 경계를 없애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마음을 없앤다.”는 말씀 등이 모두 참으로 평범한 말이더군요. 어느 때에는 어떤 책에서 “만약 세계가 둘이 아니라면 바로 지금 눈앞의 일이 모두 진실이다.”라는 구절을 보았는데, 이 말도 크게 공감되며 감동이 일었습니다. 또 마조어록에 있는 “서 있는 곳이 곧 진실이고, 발길 닿는 곳마다 주인공이다.”라는 구절이나, “중생이라고 마음이 작은 것도 아니고 부처라고 마음이 큰 것도 아니다.”라는 구절도 진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또 대혜가 서장에서 말한 “어리석음도 헛된 망상이요, 깨달음도 헛된 망상이다. 헛된 약을 가지고 헛된 병을 치료함에 병이 나아 약을 치우면, 여전히 다만 옛날 그 사람일 뿐이다. 만약 따로 사람도 있고 법(法)도 있다면, 이것은 삿된 외도(外道)의 견해이다.”는 구절도 분명하게 와 닿았습니다.

⑨ 2005년 가을부터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대혜보각선사어록』 30권을 번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보아 온 한국 간화선의 행태에 많은 의문점이 있었으므로, 간화선의 창시자가 말하는 선(禪)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서 대혜종고의 어록 전체를 번역하는 일을 맡았던 것입니다. 3년 이상이 걸린 힘든 번역작업이었습니다만, 대혜의 어록을 통하여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간화선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들 가운데 의문을 가졌던 문제들의 답을 모두 얻을 수 있었습니다만, 그것 보다는 법과 방편을 보는 대혜의 안목(眼目)을 접한 것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혜를 통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이 무엇이고 불교의 방편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유식학(唯識學)에서 말하는 “일체유심(一切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든지, 『원각경』에서 말하는 “세계도 깨달음도 꿈과 같고 환상과 같다.”라든지, 『유마경』에서 말하는 “법(法)은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알 수도 없다. 만약 보고․듣고․느끼고․안다면, 이것은 보고․듣고․느끼고․아는 것일 뿐, 법을 찾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하는 말들도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대혜의 가르침과 대혜가 인용한 경전과 조사의 말씀들은 제가 깨달은 것을 입증해주는 증거이기도 하였습니다. 대혜의 어록을 통하여 저는 저의 깨달음과 안목을 미세하고 세밀하게 다듬었습니다. 
   특히 화엄경을 읽다가 앙굴리마라가 임산부 집에 탁발간 공안을 소화시킨 뒤에 대혜가 말하기를 “참된 금강권(金剛圈)이란 바로 자기의 마음임이 밝혀져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라는 구절을 보고 대혜의 선이 어떤지를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나를 속이고
내가 나에게 속았구나.
내가 나의 감옥이요
내가 나의 해탈문이로다.

내가 없으니 세상도 없고
세상이 없으니 속임도 없다네.
내가 없으니 감옥도 없고
내가 없으니 해방도 없도다.

온갖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지만
하나의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네.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니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로다.

   마음 밖으로 벗어나려고 하므로 마음은 감옥이고, 마음 안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므로 마음은 감옥입니다. 내가 나를 속이고 내가 나에게 속습니다. 내가 나의 감옥이고 내가 나의 해탈문입니다. 문득 마음이 사라지면 안도 없고 밖도 없고, 나도 사라지고 감옥도 사라져서 걸림이 없습니다. 티끌 하나라도 마음이라고 할 무엇이 있다면, 아직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함에 어떤 물건이 있어서 장애가 되겠습니까?
   이처럼 마음도 없고 세계도 없다는 깨달음 뒤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깨달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고, 더욱 힘을 얻게 되고, 더욱 세밀하게 되고, 더욱 자신만만하게 되고, 더욱 눈이 밝아져서 무엇을 보더라도 의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마음이라 할 것도 없고 법이라 할 것도 없으니, 둘이니 둘이 아니니 하는 말도 필요가 없고, 깨달음이니 어리석음이니 하는 차별이 없고, 부처라 할 것도 없고 범부중생이라 할 것도 없고, 티끌먼지 하나 걸릴 것이 없습니다. 
   법이니 마음이니 나니 타인이니 하는 온갖 것들은 아직 깨달음이 원만하지 못하여 생긴 그림자입니다. 마치 여름날 정오에 곧은 막대기를 태양을 향하여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막대기가 조금만 기울어져도 그 모습이 그림자로 생겨서 차별되는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대기가 정확히 태양과 일치하면 그림자는 사라지고 온통 태양의 밝음이 있을 뿐 어떤 차별되는 물건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정확히 계합되면 둘이 없습니다. 나와 세계가 둘이 아니고, 나도 없고 세계도 없습니다. 변함없이 이전처럼 생활하지만 나도 없고 세계도 없습니다. 나도 없고 세계도 없지만, 당장 앞에 드러나는 보고․듣고․느끼고․아는 일들은 너무나 생생합니다. 생생하면서도 앞도 없고, 뒤도 없고, 안도 없고, 바깥도 없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습니다. 사물 하나하나가 마음이니 사물과 마음에 차별이 없고, 사물과 사물에 차별이 없습니다. 마음이 따로 없고 경계가 따로 없고, 경계가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경계입니다. 사물사물이 마음이고 마음마음이 사물입니다. 사물도 없고 마음도 없어서 마음에도 막히지 않고 사물에도 막히지 않습니다. 대혜의 선이 다만 이러할 뿐이고, 역대 조사의 선이 다만 이러할 뿐이고, 부처님의 법이 다만 이러할 뿐입니다.
   박훈산 거사님이 저를 깨달음의 문으로 안내하신 첫 번째 스승이시라면, 대혜의 어록은 저의 공부를 증명해주고 온갖 의문을 해소시켜주어 공부를 세밀하게 갈고 닦아 준 두 번째 스승이었습니다. 이 몸을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이 마음을 드러낸 이는 스승님들입니다. 스승님의 은혜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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