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무엇이 모자라느냐?

- <임제어록>에서 -

곳곳에서는, ‘닦아야 할 도(道)가 있고, 깨달아야 할 법(法)이 있다’고 말들을 한다.
그대들은 무슨 법을 깨닫고 무슨 도를 닦는다고 말하는가?
그대들이 지금 사용(使用)하는 곳에 무엇이 모자라며, 어느 곳을 닦아서 보충하겠다는 것인가?
그대들은 밥통과 똥자루를 짊어지고 밖으로 달려나가며 부처를 찾고 법을 구하는데, 오히려 지금 이와 같이 치달리며 구하는 것, 이것을 그대들은 아느냐?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나 뿌리도 줄기도 없으며, 껴안아도 모아지지 않고 펼쳐도 흩어지지 않으며, 구할수록 더욱 멀어지고 구하지 않으면 도리어 눈 앞에 있어서 신령스런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사람이 이것을 믿지 않으면 백년을 애쓰더라도 헛수고만 할 뿐이다.

그대들은 분주하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무엇을 찾느라고 발바닥에 못이 박히도록 밟고 다니느냐?
구할 수 있는 부처도 없고, 이룰 수 있는 도(道)도 없고, 얻을 수 있는 법(法)도 없다.
밖에서 구하는 모양 있는 부처는 그대들과 같지 않다.

그대들의 본래 마음을 알고자 하느냐?
합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도 닦는 이들이여! 참 부처는 모양이 없고, 참 도는 몸체가 없으며, 참 법은 모습이 없다. 이 세 가지 법은 본래 하나인데, 이것을 알지 못하는 이를 일러 ‘업식(業識)이 아득한 중생’이라고 한다.

그대들이 법과 같기를 바란다면 의심을 내지 말라.

펼치면 온 법계에 두루 퍼지고 거두면 실이나 터럭조차 세울 수 없으나, 뚜렷이 홀로 밝아서 모자란 적이 없는데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니, 이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옛 사람은 말하기를, ‘한 물건이라 말한다면 맞지 않다’고 하였으니, 그대들은 다만 스스로 살펴 보라,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출가한 이라면 모름지기 도를 배워야 한다.

나의 예를 들면, 과거 한 때에는 계율에 마음을 두기도 한 것이 수십년이고 또 경전과 논서를 탐구해 보기도 하였으나, 뒤에 이것들이 세상을 구제하는 약이며 드러내 보인 말일 뿐임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일시에 이것들을 버리고 도(道)를 묻고 선(禪)을 찾았다.

그 뒤 큰 선지식을 만나보고 나서야 비로소 도를 보는 안목이 분명해져서, 천하의 노스님들을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삿됨과 바름을 아는 것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면서 곧바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찾아보고 갈고 닦아 하루아침에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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