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이루어지는 경험의 설명


공부를 하면서 겪는 과정을 선원장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간단히 정리합니다. 사람마다 경험을 말할 때에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줄기는 일치합니다. 자신의 공부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

● 선(禪)에 대한 가르침,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에 사로잡혀 깨달음의 목마름에 빠져 있는 시기이다. 

● 이 때에는 깨달음이니 선이니 하는 말을 듣고 있지만 전혀 아는 것이 없으므로, 깜깜하고 어리석은 때이다. 

● 깜깜하고 어리석지만 가르침을 만나고 있으므로 이 문제에 더욱 사로잡힌다. 

● 시도 때도 없이 이 문제가 상처처럼 숙제처럼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다. 

● 이 문제에 사로잡혀 있지만 어떻게 할 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손을 쓰지 못하고 갑갑하게 있을 뿐이다. 

● 이 문제가 가장 크고 급한 문제로 가로막혀 있으므로, 다른 일에는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 어떻게도 할 수가 없고 기약 없이 시간을 보내니 급기야 좌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 이 때에는 비유를 하면,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자신의 구애를 받아 주지 않아서 아직 멀리서 바라보며 가슴만 졸이는 사람과 비슷하다. 

● 이 때를 보통 은산철벽에 가로막혀 있다거나, 의단(疑團)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한다.


(2) 문득 생각이 놓여진다

●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답답하고 꽉 막힌 상황에서 선지식에 의지하여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느 날 문득 막힌 것이 확 무너지면서 의문이 사라진다. 

● 의문이 사라지고 나니, 아무런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다만 한결같은 곳에 자리잡았다는 사실만 느껴진다. 

● 마치 죽어가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 같이 마음이 놓이는 안도감이 있다. 

● 무엇을 붙잡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견해가 정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 무엇도 붙잡고 있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확 트여 막힘 없이 통하여 마음에 장애가 없다. 

● 다가오는 일들에 생각의 개입 없이 즉각 반응하여 주저함이 없다.
● 생각은 필요한 경우 필요한 만큼만 이루어지므로, 생각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
● 답답하고 꽉 막힌 불확실한 어둠과 의문이 사라지므로 비로소 살길을 찾은 사람의 여유가 생긴다.
● 망상의 구속에서 풀려났으므로 너무나 상쾌하고 가볍고 자유롭고 편안하다.
● 그러나 아직은 막힘 없고 변함 없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구분되고, 자기의 생각 속에서 완전히 자유자재하지는 못하며, 여법하냐 못하냐 공부를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난다. 즉, 지켜야 할 법이 아직은 있는 것이다. 이 문제가 가장 크고 급한 문제로 가로막혀 있으므로, 다른 일에는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3) 문득 마음이 사라진다

● 어느 순간 문득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
● 마음이 사라지고 나니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지고, 세계와 삼라만상 하나하나가 곧 살아 있는 마음이다.
● 모든 일이 이전과 같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데, 또한 아무것도 없다.
● 생각을 해도 생각이 없고, 말을 해도 말이 없고, 행동을 하면서도 행동이 없다.
● 생각과 생각 벗어남이 따로 없고,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따로 없고, 실상과 망상이 따로 없고, 견성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체험이 따로 없다.
● 공부한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 말쑥하고 가볍고 한결같이 분명하여서, 법도 마음도 깨달음도 부처도 공부도 없다.
● 눈길 한 번 움직이고, 말 한 마디 듣고, 생각 한 번 일으키고 하는 순간순간의 하나하나가 한결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어서 아무런 일이 없다.
● 본래 둘 없는 하나이어서 의심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 둘 없이 다만 이 하나뿐임이 언제나 분명하다.
● 더 이상 찾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  이 경우를 반야심경에서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라 하고, 유마경에서는 불이법문(不二法門)․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하고, 육조단경에서는 지혜(智慧)․일행삼매(一行三昧)라 하고, 원오극근은 ‘그대를 속일 수 없다’라 한다. 


(4) 둘 없는 한결같음에 익숙해 간다

● 공부니 진리니 부처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이 없고, 온 세계가 변함 없이 하나의 진실일 뿐이다.
● 생활 속의 온갖 경험들과 만나는 경계들이 모두 동일한 하나의 일이다.
●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과거 익혀온 습기가 사라지고, 반야의 힘이 더욱 확고하고 자세하고 분명하고 강하게 됨을 경험한다.
● 비로소 이 공부가 한 순간의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은 쉬우나 완성하기는 어렵다는 옛 스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 육조(六祖) 스님의 “한 순간이 깨달음이고, 한 순간이 수행이다.”(頓悟頓修)라는 말씀을 수긍하면서도, 또한 능엄경에서 말한 “이(理)는 문득 깨달으니 깨달음과 동시에 해소되어 버리지만, 사(事)는 문득 없어지지 아니하여 차례로 사라져 간다.”(理則頓悟 乘悟倂銷 事非頓除 因次第盡)는 말씀도 수긍한다.
● 대혜종고가 “공부란 낯익은 곳에 낯설어 지고 낯선 곳에 낯익어 가는 것이다.”라고 한 말도 이해된다.
●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조사(祖師)의 말씀과 경전의 구절이 어떤 이치가 아니라 다만 눈앞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말이라는 사실을 더 자세히 알게 된다.
● 어떤 경계를 만나고,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모두 하나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