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느냐 마느냐는 도와 관련이 없다. 어떻게 하는 것도 조작이고, 하지 않는 것도 분별이다.”
“저는 이제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대가 생각하거나 말거나 말하거나 말거나, 도는 언제나 분명하다.”
“이렇게 분명하다고 하시는데, 왜 저에게는 캄캄하기만 합니까?”
“도가 캄캄한 것이 아니라, 그대가 캄캄한 것이다. 그대가 캄캄하든 밝든 도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러면 도는 저와는 상관 없는 것이란 말씀입니까?”
“이렇게 상관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헤아리는 것이 바로 그대의 캄캄함이다.”
“헤아리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대 마음대로 헤아릴 수는 있겠지만, 그대 마음대로 헤아리지 않을 수는 없다. 그대의 헤아림이 마구 흘러가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꽉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머물면, 언젠가는 눈앞을 가로막는 벽도 그대의 헤아림도 문득 저절로 사라지는 때가 올 것이다. 이 때에야 비로소 헤아리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어떻게도 할 수가 없군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바로 이것이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깨를 탁 치면서 말했다.
“모르는 것이지만, 이렇게 분명하다.”
“분명하면 아는 것이 아닙니까?”
“아는 것은 없지만, 또한 모르는 것도 없다. 언제나 다른 것은 없지만, 안다고도 여기지 않고 모른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그대는 언제나 두 발로 걷고 있지만, ‘오른발’ ‘왼발’ 하고 생각하는 것이 곧 걷는 것은 아니다. 그렇듯이 언제나 이것이지만, 이것이라고 생각하면 즉시 허망한 망상이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며,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도가 무엇일까? 바로 이것이다. 보아라!”
오직 허공에만 의지하고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말라
오직 없는 것에만 의지하고
어떤 있는 것에도 의지하지 말라
오직 홀로 되기만을 바라고
둘이 되기를 바라지 말라
오직 본래 하나이기만을 원하고
여럿을 모아 하나되기를 원하지 말라
오직 천년 동안의 고독 속에서 외롭지 않기만을 바라고
남에게 의지하여 고독을 벗어나려고 하지 말라
철저히 철저히 가난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때
그대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쳐다볼 얼굴도 없고
껴안을 몸뚱이도 없고
악수할 손도 없는
불러볼 이름도 없는
누구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러나 가장 생생하게 가장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가장 포근하고 가장 따스한 품을 가진
누군가를…...
“공(空)을 가리켜 주십시오.”
“그대 앞에 있는 책상이다.”
“공을 가리켜 달라고 하는데, 왜 색(色)을 가리키십니까?”
“나는 색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러면 다시 공을 가리켜 주십시오.”
“그대 앞에 있는 책상이다.”
공(空)을 찾고자 하는가?
지금 눈 앞의 한 물건과 한 생각 속에 있도다.
신기루 속에는 물이 없는데,
목마른 사람은 미친 듯이 쫓아가느라 바쁘다.
스스로가 헛되이 진실 아닌 것에 의지하니,
공(空)을 가지고서 다시 공을 찾으려 하는구나.
그대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대는 그대로이다.
그대로를 이렇다 하거나 저렇다 하거나
또는 그대로라고 하거나 한다면
그대로는 이미 그대로가 아니고
그대도 그대로가 아니다.
그대로는 다만 그대로일 뿐인데
그대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대의 잘못이지 어느 누구나 무엇의 잘못도 아니다.
그대 스스로가 힘들여 잘못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대로는 다만 그대로일 뿐이다.
헛수고하지 마시오.
보려고 하면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지 않으려 하면
아무리 해도
안 볼 수가 없습니다.
공부, 참선, 도, 마음, 업, 윤회......
망상 피우지 말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화두, 깨달음, 지금 이순간 여기, 반야......
망상 피우지 말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색즉시공, 오온개공, 하느님, 부처님......
망상 피우지 말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공, 무, 삼매, 쉼, 내려놓음, 평화......
망상 피우지 말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돈, 출세, 친구, 스승, 애인, 부모......
망상 피우지 말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감정, 원한, 원통함, 후회, 자책......
망상 피우지 말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선, 악, 옳음, 그름, 잘함, 못함......
망상 피우지 말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전쟁, 평화, 정치, 경제, 외교......
망상 피우지 말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대가 이러한 모든 망상을 쉴 때,
이들이 더 이상 그대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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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의식하지 말고, 말하지 마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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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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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토록 오랫 동안
나의 보금자리가 되어온 의식(意識)이여,
그토록 오랜 세월
나를 지탱해준 의식이여,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내 곁에 있어준 의식이여,
자랑스러운 일에는 더욱 자랑스러워 하고
부끄러운 일에도 나를 버리지 않은 의식이여,
내가 가장 믿고 가장 의지하는
나의 오랜 친구요 연인인 의식이여,
이제 나는
그대와 헤어지려 하네,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눈길이 돌려지지 않지만,
나 이제 그대에게
그만 의지하고 싶네,
내 가슴 속은 두 마리의
물소가 서로 싸우고 있네,
그대에게서 자유로와지려는 놈과
그대의 품 속에 안주하려는 놈,
자유로와 지려는 놈은 내가
응원하는 놈이지만 아직 힘이 부족하고,
안주하려는 놈은 내가
그만 정리하려는 놈이지만 아직 힘이 세구나,
나 이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려고 하네,
이제 그대 의식에게
그만 의지하려고 하네,
나는 이제 알았네
그대가 나를 붙잡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단지 내가 그대에게
매달리고 의지하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대는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지나가는 바람 같은 존재인데도,
나 혼자 그대를 짝사랑하고
나 혼자 그대에게 의지해 왔구나,
나 이제 내 어리석음 알았으니
그대와 헤어지려 하네,
이제 그대를 사랑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대를 미워하지도 않을 것이네,
본래 우리는 서로 사랑한 적도
미워한 적도 없는 것을,
늘 그대가 내곁에 있어도
이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을 것이네,
그대는 마치
나의 그림자와 같은 것,
그림자가 있다고 하여 좋아할 이유도 없고
없다고 하여 아쉬워할 이유도 없는 것,
자신의 그림자를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그저 어리석은 일일 뿐이네,
의식이여 이제 나는
그대를 그만 의식하고 싶네.
조주 스님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본래면목이니 도니 마음이니 진리니 실상이니 하는 말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고 싶은가요?
지금 보고자 하든 보고자 하지 않든 보이는,
듣고자 하든 듣고자 하지 않든 들리는,
생각하고자 하든 생각하고자 하지 않든 생각되는,
움직이고자 하든 움직이고자 하지 않든 움직이는,
바로 여기에 아무 모자람 없이 그대로 있습니다.
언제나 그랬고 언제나 그렇듯이.
바로 지금 여기에.
마음이 없다고 주장하면
이미 마음이 앞서 나아가고 있으니
스스로의 귀를 막고서 크게 소리치며 남이 듣지 못하리라고 여기는 짓이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행동할 뿐이라고 여긴다면
자기 눈을 감고서 남이 보지 못하리라 여기는 짓이다.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없애려 하니
어찌 꿈엔들 마음 없음을 알리요.
마음 있음이 곧 마음 없음이요
마음 없음이 곧 마음 있음이다.
이래도 알음알이에 기대어 있다면
마음 없음도 아니고 마음 있음도 아니라고 하리라.
아직도 허망함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놈을 잘 살펴라.
마음 없이 읽는가, 마음이 있어서 읽는가?
읽는 것이 마음인가, 마음이 읽는가?
마음이 읽는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냥 읽을 뿐이라고도 말하지 말라.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통하는 사람은 발 뻗고 푹 자겠지만,
통하지 못하면 망상에 기대어 한평생을 보내리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을 실재라고 여기는 사람을 세속인이라 한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코로 맡을 수도 없고 혀로 맛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을 실재라고 여기는 사람을 탈속인이라 한다.
세속인은 헛것을 실재로 만들고, 탈속인은 실재를 헛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둘 모두 착각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애써 해야 할 일이 많고, 일이 많으므로 바쁘고 바쁜 만큼 피곤하다.
실재와 헛것을 바로 알면 할 일이 다시 없으니 편안하다.
구원은
몸을 편하게 하는 것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생각을 편하게 하는 것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미묘한 도리를 잘 헤아려서 얻는 것도 아니요
재물을 나누어 가져서 얻는 것도 아니요
뜻을 함께 하여 얻는 것도 아니요
오랜 동안 힘드는 연습을 통하여 얻는 것도 아니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려서 오는 것도 아니요
오직 참된 그 자리를 체험하여 오는 것이다.
참된 그 자리를 체험하고자 한다면,
현재 자신의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어떤 것도 내세우지 말고
오로지 진리만을 바라고
진리만을 믿으며
경건하게
간절하게
삶의 모든 가치를 이 진리에 두고
시간이나 방법 등 어떤 것도 계산하지 말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오로지
여기에 매달려야 한다.
겉으로가 드러나게가 아닌
저 속 깊숙이에서 표나지 않게
말 보다는 행동을 앞세우며
오로지 매달려야 한다.
이 길 뿐이다.
본래
경계와 법이 둘이 아니지만,
경계를 가지고 법이라고 여기면 안된다.
경계에는
좋은 경계, 싫은 경계,
편안한 경계, 불편한 경계,
쉽게 적응이 되는 경계, 적응이 되지 않는 경계,
흡족한 경계, 흡족하지 않은 경계,
고요한 경계, 시끄러운 경계,
제 입맛에 맞는 경계, 입맛에 맞지 않는 경계,
등등으로 차별이 있으니,
경계는 곧 인연법이어서 인연따라 나타나기 때문이다.
흔히
좋고, 편안하고, 쉽게 적응이 되고, 흡족하고,
고요하고, 입맛에 맞는 경계를 법이라고 착각하여
안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안주할 무엇이 있으면,
이것은 인연법임을 잊지 말자.
인연법은 과거에 익혀온 습기에 따라
좋고 싫고, 편하고 불편하고,
입맛에 맞고 맞지 않고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연법은 벗어나야 할 굴레이다.
법은
좋아할 것도 없고, 편안할 것도 없고,
흡족할 것도 없고, 고요할 것도 없고,
입맛에 맞을 것도 없다.
법은
밝고도 분명하여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고,
흔들림 없이 안정되어 있지만,
아무런 구속도 없고 의지도 없고
머무름도 없다.
발심이란,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것을 포기하려고 하는 마음이다.
발심이란,
현재 가진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진리를 얻고자 하는,
진리를 향한 조건 없는 마음이다.
발심이란,
이익이 될 것인가, 손해가 될 것인가,
잘 될 것인가, 잘못 될 것인가를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다.
계산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다면,
그 발심은 순수하지가 못하고,
순수하지가 못하기 때문에,
그 계산이 들어맞지 않을 경우에는,
반드시 발심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발심이란,
늘 자기를 돌이켜보는 마음이지,
남을 탓하는 마음이 아니다.
발심이란,
자기를 없애고자 하는 마음이지,
자기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다.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지 마십시오.
억눌린 자신이 반드시 댓가를 치루게 만들것입니다.
잠들고 싶지 않을 때 억지로 잠들게 하지 마십시오.
잠에 취하여 깨어나기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고 싶을 때 붙잡지 마십시오.
영원히 도망쳐 버릴지도 모릅니다.
일하고 싶을 때 억지로 쉬게 하지 마십시오.
병이 들어 방에만 박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쉬고 싶을 때 마음껏 쉬도록 하십시오.
눈앞의 이익 때문에 쉬지 못하면 만성피로에 시달릴 것입니다.
정해진 옷만 입히고 정해진 가면만 씌우지 마십시오.
무기력에 빠져 당신을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익숙해진 길로만 다니도록 강요하지 마십시오.
습관에 안주하여 헤어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곳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을 때 말리지 마십시오.
일생동안 당신을 원망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참고 삼키지 마십시오.
소화불량에다 변비로 고생할 것입니다.
날뛰는 허영심을 마구 따라가지 마십시오.
크게 후회할 것입니다.
무리하게 교활하게 자신을 변호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실패자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솔직하고 솔직하도록 만드십시오.
그때에야 비로소 올바른 일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법이 어디에 있나?
손가락을 꼼지락거려봐......
도가 어디에 있나?
눈을 들어 앞을 봐......
불성이 어디에 있나?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봐......
참선이 어디에 있나?
입을 벌려 가갸거겨 말해봐......
부처가 어디에 있나?
팔을 올려 기지개를 켜봐......
본래면목이 어디에 있나?
본-래-면-목 하고 또박 또박 읽어봐......
진아(眞我)가 어디에 있나?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방바닥을 톡톡 두르려봐......
이래도 실감이 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발심해 공부해.
마지막 지점에서 전율할 기쁨을 맛볼 때까지......
법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것이다.
지금 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것이 무엇인지 보라.
법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변함 없는 것이 무엇인지 보라.
법은 조작함이 없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조작함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 보라.
법은 한정된 물건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한정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보라.
법은 살아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보라.
법은 알음알이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알음알이 이전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라.
법은 털끝 만큼의 오차도 없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 글을 읽음에 털끝 만큼의 오차도 없게 하라.
법은 가장 강력한 힘이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 하나의 움직임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말아라.
법은 없는 법이다.
지금 이렇게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임에 무슨 법이라고 할 것이 또 있는가.
스스로가 망상을 지어서 어긋나지만 않으면,
한 순간 한 순간에 법 아닌 것이 없으리라.
오늘 저녁은 뇌성벽력에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니,
감기 들지 않으려거든 방에 불을 알맞게 넣고 자거라.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
올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올 이유도 없고 갈 이유도 없다.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다.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
지금 이 마음일 뿐,
달리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 이 마음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지금 무엇을 하건 상관이 없다.
책을 보건,
커피를 마시건,
공상을 하건,
멍청히 벽면을 바라보고 있건,
이야기를 하고 있건,
전화 다이얼을 누르고 있건,
수첩을 뒤적이고 있건,
운전대를 붙잡고 있건,
연필을 쥐고 있건,
눈을 감고 있건,
소파에 앉아 쉬고 있건,
안경을 벗어 닦고 있건,
발을 꼼지락거리고 있건,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건,
머리를 돌려 먼산을 바라보건,
인사를 꾸뻑 하건,
악수를 하건,
무엇을 하건,
바로 지금의 이 마음일 뿐이다.
그러니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도(道)라니?
무슨 헛소리인가?
불법(佛法)을 나는 모른다.
불법(佛法)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팔꿈치가 가렵구나.
긁는다.
목이 마르구나.
물을 마셔야겠다.
파리 한 마리가 지그재그로 날다가,
창틀 위에 앉는다.
아까부터 보리차 끓이는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책상 위에는,
노란 형광펜,
검은 네임펜,
빨간색 무좀약병,
분홍빛 전화기,
둥근 거울,
......
지금 이 마음 이외에,
도대체 무엇이 또 있는가?
에이!
이런 말들도 모두,
머리 위에 머리를 또 그려 넣는 짓이구나.
그만두자.
......
순간 순간
끊어짐이 없이
모든 다가오는 인연에
딱 딱 들어맞아서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다가오는 모든 인연에
딱 딱 들어맞아서
어긋남이 없으려면
다른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다른 새로운 인연이란
바로 생각이 만들어 내는
모조품으로서
다가오는 인연을
생각이 처리해낸
허구의 인연이다
걸어갈 땐
그냥 걸어가면 되는데
걸어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걸어가는 이외에
걸어간다는 생각이 또 있게 되어서
걸어가는 일이 둘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둘이 되면
이 둘은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부딪히고 갈등하고
시끄럽고 엉클어져서
번뇌가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조용하고 안정되고
편안하고 싶거든
둘을 만들지 말라
생각으로 조작하여
분열시키지 말라
생각을 쉬어버리면
매 순간 부딪히는 모든 인연은
다만 그것 하나 뿐이다
하나 뿐임이
바로 만족한 상태이다
하나 뿐이어서
만족한 상태에서는
만족도 없고
불만족도 없다
만족이 있고
불만족이 있으면
불만족을 버리고
만족을 취하려는
갈등이 반드시 생겨난다
오직 만족도 없고
불만족도 없는 것이
가장 만족한 것이며
생각으로 만들어내는
또 다른 인연이 없이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치는
이 인연 하나 뿐일 때
바로 가장 만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걸어갈 땐 걸어가기만 하고
밥 먹을 땐 밥만 먹고
물 마실 땐 물만 마시고
생각할 땐 생각만 하고
화 낼 땐 화만 내고
울 땐 울기만 하고
웃을 땐 웃기만 할 뿐
어떻게 걸어간다고 생각지 말고
어떻게 밥 먹는다고 생각지 말고
어떻게 물 마신다고 생각지 말고
어떻게 생각한다고 생각지 말고
왜 화 낸다고 생각지 말고
왜 운다고 생각지 말고
왜 웃는다고 생각지 말라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왜 해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삶이 편안해질 것이다
편안하면
차분하고 고요해지는 것일 뿐이지
반대로 이유와 방법을 무시하고
온갖 욕망에 거리낌 없이
끄달려 다니는 것이 아니다
시끄럽게 끄달려 다님은
이미 옳고 그름이나
만족과 불만족이라는
두 생각에 매여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옳으니 그르니 하고 달아보는
저울을 버려라고 함은
손에 집히는대로 마구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인위적인 저울을 버리면
자연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아무 하자 없는 저울을
저절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자연의 저울은
언제나 딱 알맞게 달고 있지만
생각은 저울이 달고 있는지
어떤지 알지도 못한다
생각이 알지를 못하여
생각이 할 일이 없으니
알맞음도 없고
어긋남도 없다
알맞음도 없고
어긋남도 없음이
바로 딱 들어맞아서
진실로 어긋남이 없는 것이고
늘 하나 뿐이고
둘이 아닌 것이고
가장 편안하고 안정되는 것이다.
나는 가짜라고도 판단하지 말고,
진짜라고도 판단하지 말라.
나는 중생이라고도 판단하지 말고,
부처라고도 판단하지 말라.
나는 육체라고도 판단하지 말고,
육체가 아니라고도 판단하지 말라.
나는 정신이라고도 판단하지 말고,
정신이라고도 판단하지 말라.
참된 나를 찾아야 한다고도 판단하지 말고,
지금 이대로가 참된 나라고도 판단하지 말라.
불성(佛性)은 있다고도 판단하지 말고,
없다고도 판단하지 말라.
참나(眞我)는 있는 것이라고도 판단하지 말고,
없는 것이라고도 판단하지 말라.
지금 여기라고도 판단하지 말고,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다고도 판단하지 말라.
아무 것도 없이 텅빈 진공(眞空)이라고도 판단하지 말고,
무한히 다양한 작용이라고도 판단하지 말라.
공(空)이라고도 판단하지 말고,
무(無)라고도 판단하지 말라.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도 판단하지 말고,
본지풍광(本地風光)이라고도 판단하지 말라.
무위(無爲)라고도 판단하지 말고,
유위(有爲)라고도 판단하지 말라.
어떻게 하겠다고도 판단하지 말고,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판단하지 말라.
아무 판단도 하지 말고,
그저 쉬어라 편안히.
쉬다가 목이 마르면 물을 찾아 마실 것이고,
배가 고프면 밥을 찾아 먹을 것이고,
쉬가 마려우면 화장실로 가 쉬를 할 것이고,
전화가 오면 받을 것이고,
누가 부르면 돌아볼 것이고,
이야기를 걸면 대답할 것이다.
그대로 편안히 쉬면서,
아무 판단도 없으면서,
그 판단 없이 편안한 곳에서
그저 쉬어라 푹…
할일은 인연따라 저절로 하면서도,
그저 푹 쉬고 있을 것이다.
주위에 온통 충만해 있는
이것을 맛보아라.
손끝 하나 움직일 때마다 확인되는
이것을 맛보아라.
어디에도 걸림 없는
이것을 맛보아라.
언제나 떠나지 않고 붙어 있는
이것을 맛보아라.
자유의 환희가 담담히 흐르는
이것을 맛보아라.
의심 한 점 일어나지 않는
이것을 맛보아라.
온몸으로 느껴지고 확인되는
이것을 맛보아라.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이것을 맛보아라.
언제나 침울함이 없는
이것을 맛보아라.
언제나 뒤를 돌아보지도 앞을 내다보지도 않는
이것을 맛보아라.
어디에도 누구에도 의지하지 않는
이것을 맛보아라.
무엇도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는
이것을 맛보아라.
언제나 홀로 만족하는
이것을 맛보아라.
늘 깨어 있어서 흐림과 어둠이 없는
이것을 맛보아라.
언제나 상쾌하고 즐거운
이것을 맛보아라.
언제나 걱정도 두려움도 없는
이것을 맛보아라.
언제나 어디서나 당당한
이것을 맛보아라.
한 순간도 끊어짐이 없는
이것을 맛보아라.
바로 지금 이렇게 사용하고 있는
이것을 맛보아라.
바로 지금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것을 맛보아라.
바로 지금 귓전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것을 맛보아라.
바로 지금 손끝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것을 맛보아라.
바로 지금 생각과 더불어 움직이고 있는
이것을 맛보아라.
바로 지금 이것 속에 풍덩 빠져서 헤엄치고 있는
이것을 맛보아라.
윗쪽을 쳐다보라.
오른쪽을 바라보라.
책상을 손으로 두드려보라.
입을 벌렸다가 다물어보라.
팔을 폈다가 구부려보라.
발을 들었다가 놓아보라.
눈동자를 굴려보라.
콱!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가?
바로 이것이…..
오직 이것만이…..
산, 나무, 바위, 하늘, 구름.
한 폭의 수채화가 완성되었네.
어디에서 화가 얼굴 찾고 있는가?
눈앞에서 붓질하며 웃고 있는데.
“도가 무엇입니까?”
“가을 바람이 시원하구나.”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합니까?”
“물었으니 보여 주었을 뿐, 뜻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면 단지 이렇게 보여 주는 것이 도입니까?”
“보여 준다고 하면 벌써 어긋났다.”
“방금 보여 준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본래 이렇게 드러나 있는 것을 누가 보여 주고 누가 본다는 말이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느냐 마느냐는 도와 관련이 없다. 어떻게 하는 것도 조작이고, 하지 않는 것도 분별이다.”
“저는 이제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대가 생각하거나 말거나 말하거나 말거나, 도는 언제나 분명하다.”
“이렇게 분명하다고 하시는데, 왜 저에게는 캄캄하기만 합니까?”
“도가 캄캄한 것이 아니라, 그대가 캄캄한 것이다. 그대가 캄캄하든 밝든 도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러면 도는 저와는 상관 없는 것이란 말씀입니까?”
“이렇게 상관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헤아리는 것이 바로 그대의 캄캄함이다.”
“헤아리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대 마음대로 헤아릴 수는 있겠지만, 그대 마음대로 헤아리지 않을 수는 없다. 그대의 헤아림이 마구 흘러가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꽉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머물면, 언젠가는 눈앞을 가로막는 벽도 그대의 헤아림도 문득 저절로 사라지는 때가 올 것이다. 이 때에야 비로소 헤아리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어떻게도 할 수가 없군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바로 이것이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깨를 탁 치면서 말했다.
“모르는 것이지만, 이렇게 분명하다.”
“분명하면 아는 것이 아닙니까?”
“아는 것은 없지만, 또한 모르는 것도 없다. 언제나 다른 것은 없지만, 안다고도 여기지 않고 모른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그대는 언제나 두 발로 걷고 있지만, ‘오른발’ ‘왼발’ 하고 생각하는 것이 곧 걷는 것은 아니다. 그렇듯이 언제나 이것이지만, 이것이라고 생각하면 즉시 허망한 망상이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며,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도가 무엇일까? 바로 이것이다. 보아라!”
손가락으로 허공을 한 번 스윽 휘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