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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기사] 불교, 청년의 색으로 물들다-2. 수행하는 청년 무심선원 청년도반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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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으로 얻은 건 특별한 경험 아닌 일상 껴안는 흔들림 없는 힘”
감당하기 벅찬 고통…유튜브·책·도반 권유로 만난 ‘조사선’
생각 놓자 삶이 가벼워져… 선은 고통 벗어나는 확실한 길
세간·출세간 구분없는 불이법… 일상이 수행되는 삶 발견

“수행은 특별한 경험이 아닌 ‘바로 이것’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무심선원 청년도반들은 지금처럼 마음 밝히는 데 삶의 중심을 두고 하루하루 정성껏 살아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수행은 특별한 경험이 아닌 ‘바로 이것’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무심선원 청년도반들은 지금처럼 마음 밝히는 데 삶의 중심을 두고 하루하루 정성껏 살아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무심선원 서울선원. 법회가 끝난 뒤 20~30대 청년 10여 명이 둘러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법문에서 다룬 ‘선문공안집’의 구절과 ‘경계를 마주한다’는 말이 이들에게는 낯설지 않다. ‘선(禪)’이라는 말이 무겁지 않게 입에 오르내리며 “그냥 이 공부가 삶의 중심이 됐어요”라는 담백한 고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곳에는 조직화된 청년 모임이 없다. 누군가의 이끌림 없이 청년들 스스로가 법회를 찾는다. 함께 모였지만 각자의 공부에 몰두하며 ‘나’를 알아가려는 이들은 이 시대 도심 속 청년 선객(禪客)이다.

무심선원 청년도반들이 선수행을 찾게 된 이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허무감, 자존감 붕괴, 인간관계의 상처, 공황장애, 스트레스…. 이들이 수행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대부분은 삶의 밑바닥에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고통은 깊었고, 그만큼 갈구도 컸다. 유튜브 영상, 가족의 권유, 책 속 문장, 선배 도반의 한마디가 이들을 수행으로 이끌었다.

전업 화가 김나래(31) 씨는 20대 후반, 행복과 불행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을 절실히 실감했다고 입을 열었다. “행복은 잠시뿐이었고 이어지는 자책과 자기혐오 속에서 결국 공황장애까지 겪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에 여러 종교를 탐색하던 중 참선재단이 주관하는 일주일 수행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에 참여하면서 선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직장인 신동준(37) 씨 역시 삶의 고통을 덜어보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다 해봤어요. 운동, 연애, 상담, 각종 수행…. 그런데 근본적인 고통은 사라지지 않더라고요”라며 담담히 웃었다. 이 방법들이 일시적인 위안은 됐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과 허무감은 결코 해소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그는 삶의 표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뿌리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그 길에서 조사선(祖師禪)을 만나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행은 청년들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세상은 여전히 거칠고 관계는 복잡하지만, 이제 이들에게는 삶에 휩쓸리지 않는 든든한 마음속 안식처가 자리 잡았다.

대학생 권정인(21) 씨는 선수행을 통해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예전엔 생각이 곧 ‘나’였어요. 한 번 생각이 시작되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금세 그 생각과 기분에 잠식됐죠.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나 기분이 예전보다 더 또렷이 보여요. 덕분에 삶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얼마 전 전역한 김요한(24) 씨도 군대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마음을 다루는 힘을 체감했다. “군대에서 욕을 듣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예전 같으면 분노하거나 스트레스에 휩싸였을 거예요. 그런데 법문을 듣고 있으면 화가 나다가도 자연스럽게 가라앉더라고요.” 그는 수행이 특별한 노력이 아니라, 그저 삶을 흘려보는 새로운 태도였다고 덧붙였다.

김나래 씨 역시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고, 만남이 끝나면 에너지가 다 소진됐어요. 그런데 수행을 하면서 내가 만든 ‘나’라는 상(相)이 부서지니까 상대방의 말에도 전처럼 끄달리지 않게 됐습니다. 성격도 예전보다 활발해졌고 누구와 만나든 부담 없이 대화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혼자 있든, 누군가를 만나든, 그 자체에 휘둘리지 않고 편안해진 것이 선공부 이후 제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입니다.”

외부 환경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이 바뀌는 것. 이들이 경험한 변화는 조용하지만 깊었다. 그러나 수행이 깊어질수록 청년들 안에서는 또 다른 유혹이 피어났다. 세상의 번잡함을 등지고 오롯이 공부에만 몰입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였다.

권정인 씨 역시 한때 학업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선(禪)적 체험 이후,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1년만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었어요. ‘학교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란 생각도 들었고요. 김태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래도 학교는 다녀’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1년 반쯤 지나니 이제는 그런 생각도 사라졌습니다. ‘수행이 어디 따로 있냐’는 말처럼 지금은 법회에 꾸준히 참석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장인 최재형(32) 씨도 한때 치열한 사회생활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때마다 선배 도반들은 “세간 따로, 출세간 따로면 이법(二法)이지 불이법(不二法)이 아니다”라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삶을 버리고 공부에 몰두하는 것은 선(禪)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몸으로 체득한 이들이 전해준 생생한 조언이었다. “사실 삶과 수행을 구분하거나 조화시키려는 생각 자체가 망상입니다. 이미 둘로 나눈 전제를 인정하는 셈이니까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런 구분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수행에만 몰입하고 싶던 마음은 결국 일상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무심선원 청년도반들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이 자리에서 일상과 수행이 둘이 아님을 몸으로 체득해갔다. 그렇게 삶을 껴안는 것이 곧 참된 수행임을 깨달은 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또래들에게 선수행을 권했다.

신동준 씨는 “선(禪)은 해탈로 가는 확실한 길”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이 공부는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경계마저 뛰어넘게 해줍니다. 다른 수행이나 상담은 기껏해야 고통을 더 잘 견디게 하는 데 그치지만, 선(禪)은 고통의 원인 자체를 근본적으로 건드려 거기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장하늘(26) 씨는 “명상은 저와 맞지 않았다”고 솔직히 말했다. “명상하려고 앉아 있어도 머릿속이 너무 산만하고 잡념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조사선은 오히려 그런 저에게 맞았어요. 번잡한 생각을 억지로 없애려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도록 해줬거든요.” 법문을 듣고 스승과의 문답을 통해 점검하는  조사선의 수행 방식은 그에게 몸과 마음을 억누르는 의도적 행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편안히 바라보게 하는 자유로운 길이었다.

조사선의 방편은 법문과 면담이다. 청년도반이 김태완 무심선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조사선의 방편은 법문과 면담이다. 청년도반이 김태완 무심선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10년 뒤의 모습을 묻자 청년들은 하나같이 “어떤 모습의 수행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다”며 미소 지었다. 막연한 목표를 세우고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삶이 아니라, 지금처럼 마음을 밝히는 데 중심을 두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수행 체험’에 대해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청년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기자님이 지금 체험하고 있잖아요.” 진지함과 유쾌함이 교차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도, 그 웃음 너머에는 수행자의 단단함이 배어 있었다. 수행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바로 이것’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이들의 말에, 순간 법당의 공기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박건태 기자 sk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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