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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내 - 마음공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제1권 (입문편)

20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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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의 길에서 묻는 326개의 질문과 대답
눈 밝은 선지식의 바른 공부 안내서

   마음공부의 길을 걷는 공부인들의 질문과 선지식의 답변으로 이루어진 문답집. 무심선원 김태완 원장이 2002년부터 2020년까지 구도자들의 갖가지 물음에 답한 글 가운데 326개를 선별한 뒤, ‘마음공부란 무엇인가?, 믿음과 발심, 깨달음과 수행, 견해에서 벗어나기, 마음공부의 바른 길, 마음공부의 어려움, 마음공부와 사회생활, 체험과 그 뒤의 공부, 별별 질문들’ 등 아홉 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묶었다. 무려 19년에 걸친 질의응답을 엮었으므로 대다수 구도자가 품을 만한 질문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한국 불교 역사상, 마음공부 세계의 역사상 이렇게 공부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문답집은 없었다. 법을 보는 투철한 안목을 갖춘 선지식의 답변은 대개 일반적인 예상을 벗어난다. 이 책도 익숙하고 뻔한 대답이 아닌, 깊은 통찰에서 나오는 신선하고 놀라운 대답으로 풍성하다. 마음공부, 선 공부를 하면서 공부의 진정한 효험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큰 도움이 될 독보적인 책이다.


책 속에서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 온갖 일이 그대로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온갖 일이 있으면 그 일들에 얽매여 근심과 번뇌가 있지만,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 일이 없어서 근심도 번뇌도 없습니다. 깨달음이 어떤 것인지는 실제로 깨달아서 경험해야 제대로 알 수 있지,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51쪽)

   그러므로 연기법을 물리학의 법칙이나 생물학의 법칙처럼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연기법이든 중도든 모두 분별망상에서 해탈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방편의 말씀일 뿐입니다. 연기법이니 중도니 하는 그런 객관적 원리가 이 세상에 있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연기법은 이해의 대상도 아니고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어떤 주장도 아닙니다. 연기법을 말하는 유일한 이유는 세계를 따로따로 분별하여 보는 분별심에서 벗어나 해탈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모든 말씀은 중생의 분별망상이라는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는 약으로서 베풀어진 방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68-169쪽)

   마음의 평정을 원하시면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시는군요. 마음의 평정은 마음을 다스려서는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욱 반발하고 솟아오를 것입니다. 호수의 물결이 잠잠해지길 원하면서 물에 손을 대는 것과 같습니다. 물에 손을 대는 동안은 물결은 결코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려고 마음에 일부러 손을 댄다면, 마음은 그 때문에 더욱 성가시게 되어 불편해질 것입니다. 마음의 평정은 마음을 다스려서 얻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실상에 통하는 깨달음의 체험을 할 때 저절로 달성됩니다. 마음의 실상은 마음에 일부러 손을 대지 않고, 저절로 깨달아질 때 드러납니다. 마치 물결이 잠잠해지면 물속이 잘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194-195쪽)

   그러므로 “부처가 무엇입니까?” “마른 똥막대기다” “도가 무엇입니까?” “뜰 앞의 측백나무다”에서 우리가 화두라고 알고 있는 ‘마른 똥막대기’나 ‘뜰 앞의 측백나무’는 그런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우리의 살아 있는 마음을 곧장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마른 똥막대기’나 ‘뜰 앞의 측백나무’는 이해의 대상도 아니고, 집중의 대상도 아니고, 관찰의 대상도 아니고, 어떤 대상도 될 수 없는 우리 마음의 온전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화두를 공부하는 자에게는 오직 자기의 마음에 온전히 통하는 깨달음만 가능할 뿐, 다른 길은 없습니다. (119-120쪽)

   앉아서 좌선하면서 생각을 내려놓고 지켜보아서 얻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허공의 기분은 님이 의도하여 만들어 낸 경계일까요? 아니면 그것이 님에게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던 원래의 타고난 모습일까요? 그것이 타고난 본래의 모습이라면 일단 한 번 성취한 뒤에는 의도적 노력 없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언제나 그래야 합니다. 원래 그런 것이었는데 그런 사실을 모르고 망상 속에서 착각하며 살다가 이제 비로소 망상과 착각을 벗어나 그런 사실을 찾았으니, 특별한 노력 없이 언제나 늘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만약 앉아서 생각을 내려놓고 지켜볼 때만 그렇다면, 그것은 조건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지 내가 가지고 태어난 본래의 모습은 아닙니다. (213-214쪽)

   수용하는 ‘나’가 있고 수용해야 할 세상이 있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려면 모든 분별에서 벗어나 ‘나’도 없고 세상도 없어야 합니다. “마음 상태를 바꾸거나 좋게 만들려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살자”라는 생각이 약간의 위안은 될 수는 있겠지만, 이것도 역시 생각에 매여 있는 것이니 우리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번뇌망상에서 벗어나는 길은 아닙니다. (296쪽)


출판사 리뷰

   마음공부란 모든 굴레를 벗어나 끝없는 자유와 영원한 안식을 얻기 위한 공부다. 이 공부는 그동안 알고 있던 모든 것, 붙잡고 있던 모든 것을 떠나 새롭고 낯선 길을 걷는 것이기에 모르는 것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길을 가는 공부인에게는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끝까지 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해 줄 좋은 안내자가 필요하다.

   마음공부의 길을 걷는 공부인들의 진지한 질문과 선지식(善知識)의 친절한 답변이 옹골지게 담긴 책이 도서출판 침묵의향기에서 출간되었다. 《마음공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1》은 무심선원 김태완 원장이 2002년부터 2020년까지 구도자들의 갖가지 물음에 답한 글 가운데 326개를 선별하였다.

   그리고 주제별로 분류하여, ‘마음공부란 무엇인가?, 믿음과 발심, 깨달음과 수행, 견해에서 벗어나기, 마음공부의 바른 길, 마음공부의 어려움, 마음공부와 사회생활, 체험과 그 뒤의 공부, 별별 질문들’ 등 아홉 개의 장으로 묶었다.

   무려 19년에 걸친 질의응답을 엮었으므로 대다수 구도자가 품을 만한 질문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공부인을 위한 거의 모든 문답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부제는 초심자를 위한 입문편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깊이 있는 질문과 답변이 많아서 공부를 오래 한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유익한 책이다. 법을 보는 안목이 꽤 갖추어진 사람들을 위한 ‘심화편’도 추후 출간할 예정이다.


수많은 오해와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는다
바른 관점을 갖추어야 공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심선원 김태완 원장은 조사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선(禪)을 공부하여 불법(佛法)을 깨쳤으며, 무심선원을 설립하여 20여 년 동안 마음공부를 지도하고 있다. 선어록과 경전 번역서, 설법서 등 수십 종의 저서도 꾸준히 출간하는 등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까닭에 문하에서 불법에 눈을 뜬 사람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마음공부의 길은 무수한 오해로 점철된 길이며, 끝없이 오해를 바로잡는 길이다. 대다수 공부인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도 알고 보면 오해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래 공부해도 진정한 효과를 보는 사람이 드문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오해와 무지로 인해 잘못된 길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승이 공부를 돕는 일 중 상당 부분은 오해를 바로잡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경전과 선어록 등을 근거로 수많은 오해를 교정해 주며, 바른 관점을 갖추어 효과적으로 공부하도록 안내한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오매일여’다. 깨어 있을 때나 깊은 잠을 잘 때나 화두가 똑같이 들리는 것이 오매일여이며, 이 상태를 거쳐야 깨닫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동정일여, 몽중일여를 지나 이런 상태에 이르기 위해 애써 수행한다.

   그러나 지은이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해 33조사와 1,700선사 가운데 동정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를 거쳐서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분은 아무도 없으며,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그리고 간화선 창시자인 대혜종고 스님의 일화에 오매일여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도 대혜 스님이 깨닫기 전에 오해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오매일여에 관한 답변 중 일부를 보자.

   “대혜는 애초 깨어 있을 때 가지고 있는 의식(意識)과 마음가짐을 잠잘 때도 잃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원오 선사는 그것을 헛된 생각 즉 망상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 뒤에 원오의 한마디 말을 듣고서 문득 깨달아 망상에서 벗어나고서야 비로소 깨어 있을 때와 잠잘 때가 한결같다는 경전의 말이 어떤 말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113-114쪽)

   “이처럼 깨달음은 의식(意識)이라는 분별에서 벗어나는 체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 늘 하나가 된다는 말을 들으면, 흔히 생각하기를 자나 깨나 내가 주인공이 되어 객관인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것이 곧 자나 깨나 하나가 된다는 말이라고 오해를 합니다.

   대혜종고 역시 그렇게 오해를 했던 것이지요. 자나 깨나 화두를 들고서 꿈속에서도 놓지 않고 있다는 것도 역시 이러한 오해이며, 잠잘 때도 깨어 있다는 것 역시 이러한 오해이며, 꿈속에서 호랑이가 덤벼도 꿈인 줄 알고 두려워하지 않는다거나 미인이 유혹해도 꿈인 줄 알고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것 역시 이러한 오해입니다.

   다시 말해, 호랑이가 덤벼들어 두려워하고 놀라지만 호랑이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놀람도 없으며, 미인이 유혹하여 그 유혹에 넘어가 따라가지만 미인도 없고 유혹도 없고 넘어가 따라감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실상입니다. 색이 없어져 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색이 그대로 공인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어서 해탈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는데 해탈인 것이고, 삶과 죽음이 없어서 열반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있는데 열반인 것입니다.” (124-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