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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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천태법화의 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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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천태종(天台宗)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법화경(法華經)』에는 단 두 곳에서 ‘머묾 없음에 머문다[住無所住]’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즉, “일체법이 환상(幻相)같고 아지랑이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아서 있는 것이 전혀 아님을 이해하여 머묾 없음에 머문다.”라는 구절과 “심식(心識)을 제어하여 머묾 없음에 머문다.”라는 두 문장이다.

   그러나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에 의하여 정립된 천태사상에서는 ‘무주(無住)’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고 있다. 천태교리의 골격은 공(空)․가(假)․중(中)의 3제(諦)․3관(觀)과 장(藏)․통(通)․별(別)․원(圓)의 4교(敎)인데, 이 가운데 특히 공․가․중의 3제․3관에서 ‘무주’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공․가․중의 3제․3관은 나가르주나의 『중론』 제24관사제품의 게송인 “여러 인연으로 생긴 법을, 나는 곧 없다[無=空]고 말한다. 또한 이것은 가명(假名)이기도 하니, 역시 중도(中道)의 뜻이다.”을 근거로 하여 천태지의가 수립한 3제 연기설(緣起說)이며 3제 연기관(緣起觀)이다. 이것은 이상(二相)으로 분별된 가명(假名)이 서로 연기된 것으로서 그 실질은 공(空)이라는 연기법에서, 공에도 머물지 않고 가명에도 머물지 않는 중도를 취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도는 둘이 아니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둘이 아니며[不二而二 二而不二], 공이 곧 가이고 가가 곧 중이어서[卽空卽假卽中] 하나의 평등한 법계이다. 이 평등한 일 법계를 관하는 것을 중도제일의관(中道第一義觀) 혹은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의(智顗)는 둘이 아니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둘이 아니며, 공이 곧 가이고 가가 곧 중인 이것을 일러 “무주법(無住法)으로 경계에 머무는 것이다.”라 하고, 또 “비록 모든 법은 머무는 것이 아니지만, 무주법(無住法)으로 반야(般若)에 머물면 곧 공(空)에 들어가고, 무주법으로 세제(世諦)에 머물면 곧 가(假)에 들어가고, 무주법으로 실상(實相)에 머물면 중(中)에 들어간다. 이 무주(無住)의 지혜가 곧 금강삼매(金剛三昧)이다.”라고 하여 일심삼관(一心三觀)의 핵심이 곧 무주법(無住法)임을 밝힌다. 그리하여 ‘머묾 없는 근본으로부터 일체법이 건립된다.’는 『유마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머묾 없는 근본으로부터 일체법이 건립되니, 머묾 없는 이[無住之理]가 곧 본시(本時) 실상(實相)인 진제(眞諦)요, 일체법은 곧 본시 삼라만상인 속제(俗諦)이다.”라고 하여 ‘머묾 없음’이 곧 삼라만상의 실상(實相)임을 밝히고 있다.

   천태의 교학이 나가르주나의 중관사상을 계승하여 발전시키면서, 분별상(分別相)과 공성(空性)의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무주(無住)’가 크게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